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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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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01-26 15:44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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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 2:14-3:1)

파스칼은 그의 명저인「팡세」에서 사람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사람은 갈대와 같이 연약한 존재이지만 생각하며 사는 존재이기에 사람의 가치를 지키며 살 수 있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위대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에게 생각은 정말 중요합니다. 분명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살고, 생각하는 만큼 됩니다. 그래서 잠언서 기자가 잠언서 23장 7절에서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 즉”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언제나 축구를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좋은 축구선수가 되거나 박학한 축구전문가가 되고, 음식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전국의 맛집을 줄 줄 꿰는 사람이 되거나 좋은 요리사가 됩니다. 또 늘 고상한 것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고상한 사람이 되고, 천박한 것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천박한 사람이 됩니다. 이렇게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살고, 생각하는 만큼 됩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며 사십니까?

오늘 우리가 본문 말씀으로 함께 읽은 말씀은 히브리서 2장 14절부터 3장 1절까지의 말씀인데, 이 말씀의 결론적 말씀은 3장 1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이 말씀은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의 맨 마지막 단어가 무엇입니까? “생각하라”입니다.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그럼 누구를 생각하라고 했습니까? “예수를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생각하되 어떻게 생각하라고 했습니까? “깊이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누구에게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고 했습니까?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3장 1절의 말씀은 이미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이 된, 그래서 거룩한 형제들로 불리워지는 성도들에게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고 권고하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오늘의  본문 말씀은 신앙이 없는 사람에게 주신 말씀이 아니라 이미 신앙의 길을 걷고 있는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이런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권고의 말씀이 이미 신앙의 길을 걷고 있는 성도들, 즉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라는 설명에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질문은 예수를 깊이 생각해야 할 사람은  이미 성도가 된 우리가 아니라 아직도 예수님이 누구인지 모르는 신앙이 없는 사람이 아니냐라는 질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의 자신을 조금만 살펴보면 이 말씀은 신앙을 갖고 있다는 우리가 정말 깊이 있게 들어야 할 말씀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우리가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 그 때 우리는 예수님을 많이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말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또 어린아이가 아빠 엄마를 의지하듯이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예수님을 많이 의지했습니다.
그런데 그랬던 우리였는데 신앙의 이력이 쌓이면서 예수님을 생각하는 시간이 적어집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열기도 식어집니다. 인생을 사는데 있어서도 예수님을 의지하는 것 대신 내 경험과 판단가지고 삽니다. 교회에 나오기는 하지만 교회에서 예수님은 만나지 못하고 사람만 만나고 갑니다. 기도시간도 전보다 줄어들고 성경 읽는 것도 대충입니다. 더욱이 교회에서 이런 저런 일을 맡은 다음에는 예수님보다도 그 맡은 일에 마음을 더 쏟습니다. 그래서 신앙에 형식만 남고, 진보가 없으며,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말씀은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을 더 기억하라는 말씀이고, 예수님께 더 집중하라는 말씀이며,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신앙의 본질을 잃지 말고 신앙의 진보를 더 이루라는 말씀입니다. 즉 신앙인이라 하면서도 형식적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그리고 신앙의 진보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그리고 무기력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오늘의 우리에게 성도답게 살기를 바라며 주신 말씀이 이 말씀이다 그 말입니다.

이런 3장 1절 말씀을 바탕으로 본문 말씀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3장 1절 첫 부분에 나오는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는 오늘 본문의 앞부분 말씀인 2장 14절부터 18절까지의 내용과 방금 살펴본 3장 1절 말씀을 연결해 주는 연결단어입니다. 그럼 2장 14절부터 18절까지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 내용은 예수님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러기에 성도된 사람은 2장 14절 이하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 그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며 성도답게 살라는 말씀이 오늘 본문 말씀의 내용입니다.
그런 까닭에 성도된 우리는 2장 14절 이하에 나오는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3장 1절 말씀에서 권고하는 대로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면서 성도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럼 2장 14절 이하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 성도된 우리가 성도답게 살기 위해 깊이 생각해야 할 예수님이 어떤 분입니까?

1. 마귀를 멸하시는 분입니다.

1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창세기 3장에는 인류 최초의 범죄인 하와가 뱀, 즉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왜 하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갔을까요? 성경의 기록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그 말씀을 의심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이고, 피조물이면서도 창조주 하나님과 같이 되려 했던 교만 때문입니다. 이것이 정답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남자신자들은 거기에다 이유 하나를 덧붙인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뱀과 하와가 만나는 그 자리에 아담이 함께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그 자리에 아담이 함께 있었다면 뱀이 하와를 유혹하기 위해 나타나자마자 그냥 잡아 먹어 하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게 했을 것이다 그 말입니다. 이것은 개그입니다. 여하튼  뱀의 유혹에 넘어가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고, 그로 인해 인류는 하나님이 경고하신대로 죽음의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하나님은 그렇게 죽음의 형벌을 받게 된 인류를 구원해 주시고자 약속 하나를 해 주셨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 말씀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이 말씀에서 ‘너’는 인류를 죽음에 이르게 한 ‘마귀’를 말하고, ‘여자의 후손’은 남자의 씨를 받지 않고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그대로 하나님은 예수님을 여자의 후손으로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여자의 후손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마귀의 머리를 상하게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마귀의 머리를 상하게 하셨다는 말씀은 마귀의 계획과 뜻, 즉 마귀의 일을 멸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내용이 요한일서 3장 8절 하반절 말씀에 나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그 말씀 그대로 예수님은 마귀의 일을 멸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마귀의 일이 무엇입니까? 마귀의 일은 한마디로 사람을 망하게 하고 죽이는 일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를 망하게 했고 죽음을 겪게 했던 마귀는 이후에도 사람의 영혼을 망하게 합니다. 그리고 사람의 영과 육의 생명도 죽이고, 감사도 죽이고, 기쁨도 죽이고, 소망도 죽입니다. 이렇게 사람을 망하게 하고 죽이는 일이 마귀의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마귀의 일을 멸하려고 예수님이 하늘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위에서 그 일을 행하였습니다. 

그렇게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하늘의 능력을 가지고 마귀의 일을 멸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귀의 일을 멸하는 그 능력을 자신에게만 제한하지 않으시고, 감사하게도 그 능력을 예수님을 믿고 따랐던 제자들에게도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10장 19절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이 말씀 그대로 70명의 제자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할 때 귀신들이 항복하고 사탄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제자들이 예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그 때 마귀의 일을 멸하였는데, 그럼 그 능력을 예수님이 그 때 제자들에게만 주셨습니까? 아닙니다. 그 제자들에게 주신 것처럼 오늘에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에게도 예수님은 그 능력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8장 18절부터 20절까지의 말씀에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우리에게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여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이 주신 능력으로 우리를 망하게 하고 죽이려 하는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하늘의 부름을 받아 성도가 된 우리는 마귀의 일을 멸하러 이 땅에 오셔서 마귀의 일을 멸하신 능력의 예수님, 그리고 그 능력을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도 주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며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성경의 경고대로 오늘에도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우리에게 달려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귀의 일을 멸하신 예수님이 주신 능력으로 우리는 그 마귀와의 싸움에서 넉넉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할 첫 번째 이유입니다. 마귀의 일을 멸하셨던 예수님, 그리고 성도된 우리에게도 그 마귀의 일을 멸하는 능력을 주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며 예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그 어떤 마귀의 도전도 물리치며 사는 승리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죽음의 두려움과 죄의 형벌로부터 자유를 주시는 분입니다.

1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또 17절 하반절 말씀도 함께 읽겠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여러분! 15절 말씀에 사람들이 죽기를 무서워한다는 말씀이 나오는데, 왜 사람들이 죽기를 두려워합니까? 그 이유는 죽음 이후 맞이하게 될 하나님의 심판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나라에서 백성에게 하는 심판이든, 그리고 가정에서 자녀에게 하는 심판이든 모든 심판의 근거는 죄입니다. 하나님의 심판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 죄가 심판의 근거입니다. 그런데 거룩하신 하나님 보시기에 죄와 상관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죽음 이후 맞이하게 될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합니다. 
바울도 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던 사람입니다. 그 고민의 내용이 로마서 7장에 나옵니다. 그의 고민은 선을 행하기를 원하는데 원하는 자신이 행치 못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악을 행하고 있는 데서 생긴 고민이었습니다. 즉 자신이 원치 않고 있지만 그럼에도 짓고 있는 죄에 대한 고민을 한 것입니다. 그런 죄에 대한 고민은 죽음 이후 맞이하게 될 하나님의 심판과 연결되어 더 큰 고민이 됩니다. 그래서 로마서 7장 24절에서 그는 이렇게 절규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여러분! 그가 절규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가 절규한 내용은 ‘선을 행하며 살기를 원하나 악을 행하고 있고 거룩하게 살기를 원하나 죄를 짓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인데, 죄의 값이 사망이니 내가 바로 사망의 심판을 받을 사람이구나! 누가 이 사망으로부터 나를 건져 영생을 얻게 해줄 수 있을까’였습니다. 이런 바울의 죄와 죽음에 대한 고민과 절규가 이해되십니까?

그런데 그랬던 바울이 로마서 8장 1절과 2절에서 이렇게 외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이 말씀 뒷부분에 나오는 ‘너를 해방하였다’의 너는 나로 바꿔 읽어도 괜찮습니다. 사실 어떤 성경 사본에는 ‘나를’로 나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이제 자신이 죄와 사망의 문제에서 해방되었다 합니다. 그럼 그가 어떻게 자신의 죄와 사망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합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 즉 사람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예수님 안에 있는 법,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이라는 하나님의 구원의 법을 통해 자신의 모든 죄가 해결되어 이제는 죽음의 공포에서 자유를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 안에 죄와 사망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복음 11장 25절과 2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예수님 안에 죄사함의 은혜가 있고 영생의 은혜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죽음 앞에서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이 죽음 앞에서도 천국을 확신하며 평안을 누릴 수 있는 비결이고, 죽음 이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나는 십자가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은 의인이라고 외칠 수 있는 비결입니다. 죄의 형벌과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를 주시는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여 죄와 죽음에서 자유하며 사는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도우시는 분입니다.

16절과 17절 상반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여러분! 예수님이 왜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고 했습니까?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시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그럼 예수님이 붙들어 주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누구입니까? 갈라디아서 3장 7절 말씀입니다.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줄 알지어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누구입니까?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즉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는 성도가 예수님이 붙들어 주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그 말입니다. 분명 말씀에 나오는 그대로 예수님은 성도인 우리를 붙들어 주시기 위해 하나님이심에도 사람이 되신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성도인 우리를 붙들어 주시기 위해 친히 사람이 되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또 1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예수님이 무엇을 받고 무엇을 당하셨다고 했습니까? 시험을 받고 고난을 당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예수님이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신 까닭에 무엇을 하실 수 있다고 했습니까? 성도가 되었음에도 연약하여 이런 저런 시험을 받으며 인생을 사는 우리를 능히 도우실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예수님이 연약하여 이런 저런 시험을 받는 우리를 도우시기 위해 무슨 시험을 받으셨고 어떤 고난을 당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영광스러운 하늘 보좌에서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 오셔서 태어나실 때 누우실 방이 없어 마굿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태어나신 후에도 해롯의 칼날을 피해 애굽으로 피난을 가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성장하실 때에도 가난한 목수의 가정에서 성장하셨습니다. 그리고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마귀의 유혹도 받으셨고, 이후 사역기간에는 힘있는 제사장들이나 서기관들을 비롯한 유대의 기득권자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3년씩이나 함께 거하며 가르치신 제자들로부터 기가 막힌 배신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무 죄가 없으심에도 로마 권력에 의해 당시 가장 악랄한 사형방법인 십자가에 달리셨고, 그 십자가 위에서 또 마귀의 유혹을 받으셨으며, 결국 사형을 당하셨습니다. 그런 시험을 예수님이 받으셨고 그런 고난을 예수님이 겪으셨습니다.
그러기에 홀아비가 홀아비 사정을 알듯이 예수님은 밑바닥 인생을 사는 사람들, 집이 없어 서러움을 겪는 사람들, 이곳 저곳으로 피해 다녀야 하는 사람들, 몸으로 먹고 사는 가난한 사람들, 까닭없이 멸시당하고 핍박당하는 사람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해 아픔을 겪는 사람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는 사람들의 형편과 마음을 아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심에도 사람이 되셔서 그렇게 많은 시험과 고난을 친히 당한 분이시기에 오늘도 이런 저런 시험과 고난을 겪고 있는 우리의 마음과 형편을 헤아려 주시고 능히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시험과 고난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도우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이런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면 오늘 우리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 그 형편을 아뢰고 그 어려움에서 오는 슬픈 마음을 내어 놓고 예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이 그 시험과 고난을 극복하는 지혜라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성도인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도와주시기 위해 사람이 되어서 친히 시험과 고난을 겪으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며 붙들어 주시고 도와주시는 은혜를 받아 그 어떤 시험과 고난도 넉넉히 극복하는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은 성도가 되었음에도 성도답게 살지 못하는 우리에게 성도다운 성도로 살게 하기 우해 주신 말씀입니다. 분명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며 사는 성도가 마귀를 이기며 사는 성도다운 성도이고, 죽음의 두려움과 죄의 형벌로부터 자유를 누리며 사는 성도다운 성도이며, 붙들어 주시고 도우시는 예수님의 은혜를 체험하며 사는 성도다운 성도입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며 사는 그래서 승리를 얻고 자유를 누리며 은혜를 체험하는 성도다운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020. 1. 26 주일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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