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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떡으로 오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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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9-12-08 16:25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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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떡으로 오신 예수님
(요한 6:32-40)

대강절 둘째 주일인 오늘도 우리가 성탄절을 바로 맞이하기 위해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말씀을 지난 주일에 이어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일곱 가지 자기 선언 가운데 하나인 “내가 생명의 떡”이라는 말씀을 가지고 살펴보려고 합니다. 본문 말씀은 예수님이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게 한 기적의 사건을 행하신 다음 날, 그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과 나눈 대화의 내용이 기록된 말씀입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은 정말 놀라운 기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놀라운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은 그 다음 날 예수님을 찾아와 이런 요청을 합니다. “우리 민족의 지도자였던 모세는 우리 조상들이 광야 길을 걷고 있을 때, 하늘로부터 만나를 내려오게 하여 굶주리지 않게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도 어제 굶주리고 있던 우리를 배불리 먹게 해 주셨습니다. 다시 한 번 우리에게 그런 기적을 보여주시어 선생님이 모세와 같은 우리 민족의 지도자임을 확인시켜 주십시오.”
이런 요구를 예수님이 받으셨는데 예수님은 그 요구에 대한 대답을 하시지 않고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그 때 너희의 조상들에게 떡을 준 것은 모세가 아니었다. 하나님이 하루에 한 번씩 너희 조상들의 생명을 유지시켜 주기 위해 주신 것이다. 그러셨던 하나님이 이제는 그런 떡과는 차원이 다른 참된 떡을 하늘로부터 너희에게 주려 하신다. 그 떡은 사람들에게 영원한 만족을 주며 영원한 생명을 주는 떡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 그들은 바로 요구합니다. “그렇다면 그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십시오.”
그런데 그런 그들의 요구를 들으신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답변을 주시는 것 대신 선언적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바로 하늘에서 온 생명의 떡이다. 그러기에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않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을 인생들에게 주시기 위해 자신이 생명의 떡으로 하늘로부터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성탄절을 바로 맞이하기 위해서는 ‘내가 하늘로부터 온 생명의 떡이다’는 이 예수님의 자기선언의 말씀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 깨닫지 못하면 우리는 진정 성탄절을 바로 맞이할 수 없습니다.
그럼 예수님이 선언하신 내가 생명의 떡이라는 말씀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습니까? 의미를 떡의 기능과 성질을 살펴보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먼저 떡이 가지고 있는 기능을 살펴보면서 ‘내가 생명의 떡’이라는 말씀에 담겨 있는 의미를 찾아보겠습니다.

여러분! 떡의 기능이 무엇입니까? 떡은 크게 세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 기능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기능입니다. 사람이 단식을 하면 생명력이 약해져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단식으로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까지 이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에게 떡을 먹이면 그 꺼져가던 생명이 다시 힘을 얻습니다. 이렇게 떡에는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기능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떡에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기능이 있음을 인식하면서 예수님의 ‘내가 생명의 떡’ 이라는 말씀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바로 이해하려면 우리가 먼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생명에는 육체적 생명과 영적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생명에는 한계가 있는 이 땅에서의 육체적 생명과 한계가 없는 영원한 영적 생명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육체적 생명은 이 땅이 공급해 주는 떡을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 생명은 그런 땅이 공급해 주는 떡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내려온 생명의 떡을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나는 하늘로부터 온 생명의 떡이다”는 예수님의 말씀에는 “사람은 예수님을 먹어야 영적 생명이 산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 가운데 ‘먹어야’라는 단어는 35절에 나오는 ‘내게 오는 자’의 ‘오는’ 이라는 단어와 ‘나를 믿는 자’의 ‘믿는’ 이라는 단어와 같은 의미의 단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는 35절 말씀은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께 오는 자 즉 예수님을 먹는 자는 결코  영적 생명이 주리지도 아니하고, 또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 즉 예수님을 먹는 자는 영원히 영적 생명이 목마르지도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 그대로 그 누구라도 하늘로부터 온 유일한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께 나아와 예수님을 믿으면, 즉 예수님을 먹으면 영생을 얻고 구원도 받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아무리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리고 아무리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께 나오지 않고 믿지 않으면, 즉 예수님을 먹지 않으면 영생을 얻을 수 없고 구원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사도행전 4:12) 이 말씀 그대로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구원을 주십니다.

떡의 기능 가운데 두 번째 기능은 생명을 연장시키는 기능입니다. 굶주려 죽어가던 사람에게 떡을 주면 그 사람은 다시 생명을 얻습니다. 그러나 생명이 다시 살아났다고 떡 주는 것을 중단하면, 그 사람은 다시 생명을 잃을 위험에 빠집니다. 이렇게 사람은 떡을 통해 생명이 연장됩니다.
영적 생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께 나와 예수님을 먹음으로, 즉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적 생명을 얻었다 해서 이제 됐다 하며 예수님을 더 이상 먹지 않는다면 그 영적 생명은 다시 잃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는 계속해서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먹어야 합니다. 즉 모든 일에 예수님의 능력을 의지해야 하고, 순간 순간 예수님과 함께 호흡해야 하며, 매일 매일 예수님의 말씀을 양식으로 삼아야 한다 그 말입니다. 분명 예수님 없는 우리의 영적 생명은 물을 떠난 물고기처럼 절대 유지될 수 없습니다. 

떡의 기능 가운데 세 번째 기능은 생명의 능력이 되는 기능입니다. 떡은 사람에게 힘을 주고 의욕을 주며 풍부한 창조적 사고를 하게 합니다. 그래서 떡을 통해 얻게 된 힘과 의욕과 창조적 사고를 가지고 사람은 능력있게 살 수 있습니다. 이렇게 떡은 생명의 능력이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능력이십니다. 그래서 그 분을 믿는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인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홍해를 가르기도 하고, 큰 산을 평지가 되게도 합니다. 그리고 보통의 사람들이 할 수 없는 고난 중에도 감사하고, 핍박을 받으면서도 핍박하는 자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며, 용서할 수 없는 원수도 그저 사랑하고, 절망의 심연에서도 소망 가운데 살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작은 자까지도 겸손하게 섬깁니다. 그리고 세상의 유혹과 죄악도 이기며 삽니다. 그렇습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의 영적 능력이 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렇게 떡에는 생명을 살리고, 생명을 연장시키며 생명의 능력이 되는 기능이 있습니다. 이런 떡의 기능이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영적 생명을 살리시는 분이시고, 생명을 연장시키시는 분이시며, 영적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인답게 살게 하는 영적 생명의 능력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자신의 영적 생명을 위해 예수님을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땅의 떡은 입으로 먹으면 되지만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은 믿어야 먹을 수 있습니다. 믿으면 예수님의 생명이 내 생명 되어 영생을 얻고, 믿으면 예수님의 인격이 내 인격 되어 저 천국 갈 때까지 거룩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으며, 믿으면 예수님의 능력이 내 능력되어 세상도 이기고 죄악도 이기고 죽음까지도 이기는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축복하기는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라는 사실을  온전히 믿는 믿음으로 영적 생명이 풍성한 삶을 사는 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다음으로 떡에 있는 성질을 살펴보면서 ‘내가 생명의 떡’이라는 말씀에 담겨 있는 의미를 찾아보겠습니다.

여러분! 떡에 있는 성질이 무엇입니까? 떡에는 세 가지 성질이 있습니다. 첫 번째 성질은 완전하게 완성된 식품으로서의 성질입니다. 유대인들의 떡을 만드는 과정은 우리나라와 비슷한데, 먼저 곡식을 곱게 빻아 가루를 만든 다음 그 가루에 물을 부어 잘 반죽합니다. 그런 다음 그것을 넓게 펴서 솥에다 찌든지 아니면 오븐 같은 곳에다 굽습니다. 그렇게 해서 접시만한 넓적한 떡을 만드는데 그것으로 떡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완전하게 완성된 식품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떡의 완전하게 완성된 식품이라는 성질이 예수님에게도 있음을 성경의 말씀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기 전 외치셨던 일곱 마디 말씀 가운데 하나인 요한복음 19장 30절에 나오는 “다 이루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다 이루었다”는 말씀은 우리를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이제 완전하게 완성된 생명의 떡이 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생명의 떡이 되시려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사람들을 위해 더 이상 다른 것이 필요 없는 완전한 영생과 구원의 길을 완성시켜 놓으셨습니다. 그러기에 완전하게 완성된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유일한 영생과 구원의 길로 믿는 사람은 그 누구라도 영생을 얻을 수 있고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진정 이 믿음 외에 더 할 것은 하나도 없고 다른 방법도 절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예수님이 완전하게 완성된 생명의 떡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잘못된 신앙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슨 선행이나 헌금이나 고행 같은 것이 플러스 되어야 영생도 얻고 구원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주장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완전히 완성된 생명의 떡이 되시어 우리가 영생을 얻고 구원을 받는데 있어 그 어느 것도 필요하지 않도록 다 이루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착한 일도 많이 해야 하고, 헌금도 해야 하며, 금식 같은 것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하는 이유는 영생과 구원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영생과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서 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통해 성도가 된 자답게 살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떡으로 이 땅에 오셔서 영생과 구원의 길을 완전히 완성해 놓으신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런 생명의 떡이 되신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예수님이 완전히 완성해 놓으신 그 길을 믿음 가지고 걸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떡의 성질 가운데 두 번째 성질은 모든 사람에게 다 필요하다는 성질입니다. 떡은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꼭 먹어야 하는, 모든 사람에게 다 필요한 음식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나는 생명의 떡이다”는 선언에는 예수님이 모든 사람에게 다 필요한 분이라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다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이 세상에서도 살기를 원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천국에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는 천국가기를 원한다 하면서도 ‘나는 예수가 필요 없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나는 지금껏 나름대로 착하게 살아왔다. 남에게 해도 입히지 않았고 양심에 어긋나는 일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나는 천국에 갈 수 있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 말은 틀린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천국은 절대 거룩하신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과 같이 거룩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곳인데, 아무리 착하게 살아온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리고 아무리 양심껏 살아온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나도 하나님과 같이 거룩하다고는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분명 모든 사람에게는 알고 지은 죄도 있고 모르고 지은 죄도 있습니다. 그리고 겉으로 나타난 죄도 있고 마음으로 지은 죄도 있습니다. 그리고 남이 알고 있는 죄도 있고 자신만 알고 있는 죄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3:23) 즉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하나도 없다 그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죄로 인해 지옥에 가야할 사람들을 하나님은 그냥 외면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이 세상에 생명의 떡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생명의 떡으로 자신의 몸을 내어주시며 영생과 구원의 길을 완전히 완성시켜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그 누구라도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이 열어놓으신 영생과 구원의 길을 믿고 그 길을 걸으면 모든 죄에서 사함 받고 천국에 갈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예수님이 필요 없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에게는 분명 죽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심판이 있습니다. 그리고 영원의 나라인 천국과 지옥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지옥에 가고 싶어 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이 다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영생과 구원의 길을 완전하게 완성하신 생명의 떡이심을 믿는 우리는 아직도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심을 전해야 합니다.

떡의 성질 가운데 세 번째 성질은 먹히기 위해 존재한다는 성질입니다. 떡은 아무 힘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떡은 사람들에게 늘 먹히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그렇게 먹힘으로 사람들에게 살아갈 힘을 주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도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먹히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즉 다른 사람을 잡아먹음으로 자신이 살겠다고 이 세상에 오신 분이 아니라, 그것과는 정반대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완전히 먹히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님이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후 십자가에서 죽으시며 먹히셨습니다. 그리고 그 먹히심을 통해 사람들의 영혼의 배를 채워 주셨고, 사람들의 삶에 용기와 소망과 의욕도 불어넣어 주셨으며, 사람들에게 만족과 기쁨과 평화를 얻게 해 주셨고 사람들을 하나님과 평화를 이루게 해주셨습니다.

사실 오늘 이 세상은 삭막한 세상이고, 평화가 없는 세상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 이유는 한마디로 이 땅의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으려고만 하지 자신이 먹히려고 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생명의 떡으로 이 세상에 왔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이 세상에 따뜻함과 평화를 주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버리시겠다는 선언의 말씀입니다. 그렇게 선언하시고 그렇게 생명을 버리신 예수님은 오늘에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에게 “이제 너희가 세상에 따뜻함과 평화를 주기 위해 떡이 되어 희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대강절 기간에 과연 내가 남의 것을 먹으려고만 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예수님처럼 남에게 먹히는 떡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려운 이웃과 외로운 이웃에게 떡이 되어 사는 그런 삶을 이제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렇게 떡은 완전하게 완성된 식품이라는,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다 필요하다는, 그리고 먹히기 위해 존재한다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떡의 성질을 예수님이 갖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는 생명의 떡이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이 선언의 말씀을 믿고 신앙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 선언의 말씀을 모든 사람에게 알려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 선언의 말씀을 가슴에 품고  오늘의 작은 예수가 되어 평화의 도구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대강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이 주간 생명의 떡으로 오신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십시다. 그리고 그 묵상을 통해 자신의 신앙내용도 반듯하게 정리하고, 생명의 떡이 되시어 내게 너무도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신 예수님께 감사도 드리며, 이제 내가 작은 예수가 되어 감당해야 할 사명도 잘 감당하겠다고 결단하십시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의 은혜를 통해 여러분의 영적 생명이 풍성한 생명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2019. 12. 8. 주일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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