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최상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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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9-11-10 16:07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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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의 감사
(고린도후서 8:1-5)

다음 주일은 지난 일 년을 돌아보며 감사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그런데 사실 오늘 이 땅의 현실상황은 지금도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혼란한 정치적 상황과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어려운 경제적 상황과 그리고 오늘에도 미사일을 쏘고 있는 북에 의한 위협적 상황과 같은 힘들고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렇게 감사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는 금년 추수감사주일을 한 주 앞두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목사인 저는 여러분이 금년 추수감사주일을 감사는 없고 매년 교회에서 행하는 절기예배 정도로 지키지 아니할까라는 그런 염려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상황에 흔들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오늘의 상황이 어떠하든 다음 주 추수감사주일에 감사로 예배를 드려야 하고, 감사로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에는 오늘 우리의 현실보다도 더 기막힌 현실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했던 마게도냐교회 교인들의 감사의 모습과 내용이 나옵니다. 이 마게도냐교회는 데살로니가교회를 가리킵니다. 당시에는 데살로니가 지역 전체를 일컬어 마게도냐라고 불렀습니다. 그 지역에 복음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한 이방인들과 유대교에서 개종한 유대인들이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교회가 마게도냐교회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세워진 마게도냐교회는 이제 막 시작된 교회였기에 여러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인적 자원도 부족했고 재정도 부족했습니다. 거기에다 더 심각한 어려움이 있었는데, 그것은 유대교로부터 받는 박해였습니다. 유대교 사람들은 마게도냐교회 교인들의 생명을 위협했고 재산도 빼앗았는데, 그런 유대교 사람들의 박해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로 인해 마게도냐교회는 교회를 유지하기도 힘들었고, 교인들도 평안한 가운데 신앙생활하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도 마게도냐교회 교인들은 조금도 요동하지 않았습니다.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믿음으로 하나가 되어 교회를 지켰고, 박해를 받으면서도 신앙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선교사역을 후원하기 위해 힘을 다해 헌금을 하여 바울에게 전달했습니다.

저는 이 마게도냐교회 교인들이 그 때 바울의 선교사역을 후원하기 위해 바친 헌금을 감사라는 말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헌금은 감사의 마음을 물질로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때 그들은 그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너무도 귀한 감사의 모습과 자세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때 그들이 보여준 감사를 최상의 감사라 부릅니다.
우리도 다음 주일에 지키게 될 추수감사주일을 마게도냐교회 교인들이 보여준 최상의 감사를 드린 모습과 자세로 지켜야 합니다. 그럼 제가 왜 마게도냐교회 교인들의 감사를 최상의 감사라 부르는 것일까요?
       
1. 그들의 감사가 환난 중에 드린 감사였기 때문입니다.
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마게도냐교회는 참으로 어려운 환난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에서도 그들은  정성껏 헌금을 하여 선교사역을 하고 있던 바울에게  전달했습니다. 환난을 겪으면서 헌금한다는 것, 즉 환난을 겪으면서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것, 이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헌금을 받고 감격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포함한 보통의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삶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것은 편안할 때에는 여유를 가지고 감사하며 살지만, 어려움이 다가오면 불평과 원망을 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게도냐교회의 교인들은 환난을 겪고 있으면서도 믿음을 굳게 지켰고, 그 믿음으로 헌금을 드리며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들의 감사를 최상의 감사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35년 전에 있었던 버마의 아웅산 사건 때 우리 나라의 좋은 인재들이 많이 희생되었던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 분들의 장례식 때 한 기자가 그 사건으로 희생당한 대통령 비서실장의 17세 된 딸에게  지금 마음이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여러분! 그 기막힌 일을 당한 딸의 심정이 어떠했을 것 같습니까? 아버지를 죽인 사람들에 대한 미움과 원한의 마음을 갖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17세 된 딸은 그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지난 17년 동안 좋은 아빠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기자가 어떤 대답을 기대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소녀는 감사를 고백했습니다.  환난 중에 있으면서도 감사한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능력이 위대합니다. 진정 누구든지 신앙 안에서 제대로 살아가기만 한다면 환난 중에서도 이런 위대한 감사의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그는 위대한 신앙의 사람답게 수많은 환난을 겪으면서도 감사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신앙인들을 향해서도 어떤 형편에서든지 범사에 감사하라고 권면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도 여러 가지 아픔을 지금 겪고 있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분들 가운데 나는 불평할 이유만 있지 감사할 이유는 없다고 말씀하실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분들은 방금 말씀 드린 17세 소녀의 감사와 마게도냐교회 교인들의 감사를 생각하면서 그 아픔 속에서도 감사할 이유를 찾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분명 환난 중에도 하는 감사가 최상의 감사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는 나 같은 죄인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그리고 내가 지금 힘든 상황에 처해있지만 그럼에도 그런 나와 함께 하고 계신 하나님의 인도를 확신하며 그리고 내일의 삶에도 함께 해주실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며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바라기는 다음 주일에 지키는 추수감사주일에 그런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와 은혜에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2. 그들의 감사가 가난 중에 드린 감사였기 때문입니다.
2절 중간부터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극심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가난에도 등급이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가난은 극심한 가난입니다. 극심한 가난이란 가장 낮은 등급의 가난, 즉 밑바닥 가난이란 말입니다. 그런 가난이 마게도냐교회 교인들의 경제적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가난 속에서도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자신들이 감당해야 할 일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먹어야 할 것을 먹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리고 써야 할 돈을 쓰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 일을 우선하여 감당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헌금을 했고 그 헌금을 바울에게 선교비로 보냈습니다. 그렇게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헌금을 드린 그들의 모습은 진정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성숙이 무엇입니까? 성숙은 분노할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 온유를 잃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눈물이 쏟아져야 할 상황에서도 눈물을 보이지 않고 감정을 조절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먹을 것이 없어 며칠을 굶었어도 남의 것을 훔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렵고 가난한 때에도 자신의 의무를 최선을 다해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잘못되었을 때 남 탓을 하지 않고 자신이 책임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숙의 내용입니다.
신앙에도 성숙한 신앙이 있습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시간만큼은 철저하게 지킵니다. 그리고 아무리 생활이 쪼들려도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만큼은 철저하게 드립니다. 그리고 아무리 어렵고 기가 막힌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삽니다. 그리고 힘든 환경에서도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을 최선을 다해  철저하게 감당합니다. 이것이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니다.

이런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을 마게도냐교회 교인들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극심한 가난으로 자신들의 삶도 지탱하기가 어려웠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감사를 잃지 않았고, 그 감사의 마음에서 바울에게 선교비를 보냈습니다. 극심한 가난 중에서도  감사하는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을 그렇게 그들은 보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감사를 제가 최상의 감사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오늘 이 나라와 우리의 형편이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감사했던 마게도냐교회 교인들을 생각하면서 그들과 같은 성숙한 신앙의 자세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바라기는 다음 주일 지키게 될 추수감사주일에 형편을 뛰어넘는 성숙한 신앙의 자세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그들의 감사가 자원해서 힘껏 드린 감사였기 때문 입니다.
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마게도냐교회 교인들은 감사를 하되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그들의 감사가 억지로 한 감사나 대충 때우는 식으로 한 감사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두 말 할 필요 없이 억지로 하는 감사나 대충 때우는 식의 감사는 진정한 감사가 못됩니다. 분명 진정한 감사는 자원해서 해야 하고, 힘껏 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그들이 그런 자원하는 감사와 힘껏 하는 감사를 하나님께 할 수 있었을까요? 저는 그 이유가 그들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내용을 바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내용을 바로 알고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큰 죄는 무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무지란 단순히 알지 못한다는 뜻을 넘어 깨닫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이 말은 깨닫지 못하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큰 죄라는 말입니다. 그 말 그대로 부모님께 불효하는 것은 부모님의 사랑을 바로 깨닫지 못하기에 짓는 죄이고, 나라를 배신하는 것도 나라의 고마움을 바로 깨닫지 못하기에 짓는 죄이며,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를 바로 깨닫지 못하기에 짓는 죄입니다.

마게도냐교회 교인들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내용을 바로 알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우선 멸망 받아야할 자신들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또 그들은 신앙 때문에 자신들이 핍박을 당하고 있는 것이나 가난하게 살게 된 것도 자신들에게 큰 영광이 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리고 또 그들은 자기들과 같이 가난한 사람들도 하나님의 일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리고 또 그들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반드시 자신들에게 이제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자원하여 힘껏 감사했습니다. 이렇게 감사해야 할 내용을 바로 깨닫고 자원하여 힘껏 하는 감사가 진정한 감사이고, 최상의 감사입니다.

여러분! 다음 주일에 지키게 될 추수감사주일에 여러분은 어떤 내용으로, 그리고 어떤 자세로 하나님께 감사하려 하십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환경의 좋고 나쁨 때문도 아니고, 소유의 많고 적음 때문도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내용을 바로 깨닫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와 사랑을 비롯하여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를 바로 깨닫기만 한다면, 그 깨달음의 내용을 가지고 자원하는 자세와 힘껏 하는 자세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바라기는 추수감사주일인 다음 주일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섭리와 인도를 바로 깨닫고 자원하는 자세와 힘껏 하는 자세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4. 그들의 감사가 자신을 드리는 감사였기 때문입니다.
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바라던 것 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환난 중에서 하는 감사는 정말 귀한 감사입니다. 그리고 극심한 가난 중에서 하는 감사도 아주 소중한 감사입니다. 그리고 자원하여 힘껏 하는 감사도 너무도 아름다운 감사입니다. 그런데 그런 감사들 보다 더 귀하고 소중하며 아름다운 감사가 있습니다. 그 감사는 먼저 자기 자신을 드리며 하는 감사입니다. 이것이 감사 중에 최상의 감사입니다.

마게도냐교회 교인들은 바울의 선교사역을 돕기 위해 자원하여 힘껏 헌금을 했습니다. 그 헌금은 바울이 인정했던 것처럼 풍성한 헌금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바울이 풍성하다고 인정해 주었지만 그럼에도 그 때 그들이 바친 헌금은 당시 로마 황제의 한 끼 음식값 정도 밖에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때 극심한 가난 가운데 있었던 그들이  드렸던 헌금이 액수로는 그리 많지는 아니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의 헌금을 풍성한 헌금이라 하며 칭찬해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드린 헌금 안에 그들 자신이 이미 들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부자와 과부의 헌금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부자는 많은 액수의 헌금을 자랑스럽게 내보이며 했고, 과부는 아주 적은 액수의 헌금을 숨어서 했습니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의 헌금 가운데 예수님은 과부의 헌금을 귀한 헌금이라고 인정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부자에게는 헌금 이전에 자신을 바치는 신앙의 내용이 없었고, 과부에게는 헌금 이전에 자신을 바치는 신앙의 내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다음 주일에 지키게 될 추수감사주일에 무엇을 드리시겠습니까? 나름대로 정성껏 감사헌금을 준비하여 드리실 줄 압니다만, 그런데 그것보다 더 우선해서 드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번 추수감사주일에 그 어떤 물질보다도 먼저 우리를 예물로 받기 원하고 계십니다. 바라기는 그 하나님께 먼저 자신을 드림으로 이번 추수감사주일에 최상의 감사를 드리는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마게도냐교회는 아주 가난했던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다 많은 박해를 받으며 환난도 겪고 있던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중에서도 마게도냐교회 교인들은 먼저 자기를 드리며 자원해서 힘껏 헌금했고, 그렇게 하나님께 기쁨으로 감사했습니다. 그런  그들을 바울은 크게 칭찬해 주었습니다. 이런 칭찬받는 감사가 최상의 감사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 역시 많은 어려움 가운데 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감사 대신 불평과 원망가운데 살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감사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감사하는 자의 내일을 열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사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인의 의무임과 동시에 신앙인의 능력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마게도냐교회 교인들이 보여준 감사의 자세와 내용을 배워 그런 감사를 해야 합니다. 바라기는 이번 추수감사주일에 마게도냐교회 교인들처럼 최상의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2019. 11. 10. 주일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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